광교산 산행 [2009년 3월 1일] 일상 이야기

운동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주말이면 광교산에 올라가려고 등산복과 등산화를 준비했다. 지난 주에 올라보니 예상했던 만큼 힘들지 않아서 매주 올라도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경기대 쪽에서 올라 형제봉 -> 시루봉 -> 수지성당으로 내려올 계획이었다. 그런데, 목요일 사진동호회 회식, 금요일 팀회식, 어제 예상치 못하게 마신 소주와 백세주와 맥주와 고량주 때문에 체력이 바닥나서 형제봉 정상에서 코스를 급 변경해야 했다.

집 앞 정류장에서 경기대 가는 버스편이 많다. 사실 한 두개 버스를 제외하면 전부 경기대를 지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검정색으로 도배된 등산복을 입고 숙취에 흔들거리며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이 누군가에겐 이제 막 하산한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20분 정도 걸려 경기대 후문 쪽에서 하차해 터벅터벅 길을 걷는다.
아 그러고보니 오늘이 삼일절이다. 이런 뜻 깊은 날이 일요일과 겹치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올해는 직장인들에게 암흑같던데 우리도 공휴일과 주말이 겹치면 하루 더 쉬게 해주는 제도가 도입되면 좋겠다. 이래 저래 일하는 시간이 줄면 기분 좋다니까. 보통 삼일절 전후로 입학식이 있는데, 경기대는 내일이 입학식처럼 보인다. 전에 대학에 입학 할 때는 고생 끝 행복 시작일 것만 같았다. 어느 정도 그 말처럼 살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더라. 지금처럼 경제가 안좋다고 하는 때에 입학을 하는 이 친구들은 IMF 경제 위기 때 입학한 나보다도 더 갑갑할 것 같다. 뭐 알아서 각자 잘 해야하는 게 맞지만.
경기대 쪽에서 광교산을 오른 것은 몇 년만인데, 예전에는 가파랏던 산길에 계단이 들어서서 오르기는 훨씬 수월해졌다. 그런데 계단은 너무 싫다. 무려 380 계단, 100 미터 정도나 되는데 딱 마주치는 순간 한숨이 나왔다. 나는 수지에서 오르는 시루봉 보다 경기대에서 오르는 형제봉이 더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 이쪽에서 사람들이 많이 오르는 이유가 가까워서도 있겠지만 오르기 쉽기 때문일 수도 있겠더라.
형제봉에 오르니, 숨이 탁 막혔다. 다리도 엄청 무겁게 느껴지고. 한참 쉬면서 싸온 물을 마셨다. 시루봉까지는 약 2.2 킬로미터 거리인데 내 걸음이라면 4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다. 몇 번씩 가본 시루봉을 또 가려니 심심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과감히 한번도 가보지 않은 도마치고개라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형제봉 이름은 형님봉과 아우봉이 있어서라고 전에 들었지만 아우봉이 어떤 것인지는 몰랐다. 도마치고개 쪽으로 내려오다보니 그 앞에 높지 않은 언덕 끝에 바위가 있는데, 그것을 아우봉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바위 아래서 올라갈까 고민하다 귀찮아서 계속 가던 길로 향했다.
근처에서 걷던 아주머니께 여쭤보니 그 길로 쭉 가면 신복동 방면이 나온단다. 신봉동이면 대충 위치를 알 것 같아서 하산해 버스타고 가야겠단 생각을 했다. 한참을 터벅터벅 걷는데, 도대체 도마치고개라는 곳은 어디쯤 있는 것인지 나올 기미가 없다.
볕도 좋고 바람도 좋아서 나들이 하기엔 최고의 날씨다. 봄이라고 우겨도 토달지 않을 것 같다. 길을 한참 걸었지만 마주치는 사람도 몇 안되고, 도마치고개라고 적힌 푯말도 없고, 도대체 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1시간 정도 걸었을까. 한참 공사 중인 도로가 나온다. 서수지 톨게이트라고 하는데, 이 길은 어디를 이어주는 것일까.
황량하다. 이건 내려가는 길도 안보이고, 사람도 없고, 차조차도 안다닌다. 바람이 일고, 먼지가 나를 덮는다. 이런, 난 어디 있는 거지.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도마치고개를 물어보려고 했으나, 인터넷이 되는 친구가 당장 섭외가 안된다. 이런 낭패다. 한참 걸어 내려가다 문득 주변을 둘러볼 필요를 느껴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산으로 올라갔다. 멀리 보며 위치와 거리를 짐작하고 있는데, 다행히 등산객 두 분이 내려오신다. 이 쪽으로는 처음 내려오는데, 수지 쪽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할까요 묻는다. 그 분들은 이 쪽 길을 자주 다니시는 듯 자세히 친절히 설명해 주신다. 역시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불안불안한 마음으로 먼지 가득한 공사장 길을 따라 걷는다. 
한참 공사 중인 아파트 옆으로 제법 멋져 보이는 빌라들이 눈이 들어온다. 이미 이주가 끝난 모양인 듯 역시 황량하다. 내가 이런 곳을 헤매고 있다. 20분 정도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니 미금역으로 가는 버스가 눈에 띈다. 어찌나 반갑던지 아싸 하면서 뛰어 올랐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씻고 스타 봤다. 스타 보고 잠깐 졸고, D200 구매하기로 한 사람이 펑크를 내서 짜증이 좀 났지만 청소를 마치니 기분이 또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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